돈은 언제 처음 사용되었을까?
최초의 금화는?
고려자기 모양의 돈 - '은병'
왜 '돈'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조선시대의 기념화폐 - 상평통보 '별전'

 
인간은 오랜세월 화폐없이 물물교환에 의존해 살아왔다.
초기에 사람들이 돈으로 사용한 것은 소금을 비롯하여 조개껍질, 가죽, 옷감, 동물 뼈 등의 입거나 먹을 수 있는 물품이었다. 특히 조개껍질은 화려함과 견고성 때문에 기원전 3천년경부터 돈으로 쓰여왔고 돈과 관련된 한자말에는 조개 패(貝)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기원전 10세기 전후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며 금속이 다른 종류의 돈을 대신했다.
기원전 8세기 중국에서 농기구와 칼의 모양을 본떠 만든 포전(布錢)과 도전(刀錢)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기자조선에서 자모전(子母錢)이라는 철전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마한에서 기원전109년에 동전을 처음 주조 하였으나 삼국 시대까지는 금속 주화 보다는 쌀과 베를 중심으로한 곡화(穀貨), 미화(米貨), 포화(布貨) 등이 널리 쓰였다. 본격적인 돈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는 때는 고려시대 부터이다.
 
주화란 일정한 무게의 금속 조각에 발행한 곳의 마크나 스탬프를 새긴 것인데 표준 가치를 지닌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경 터기 서쪽 지방의 리디아 인들에 의해 일렉트럼(금 75%, 은 25%)이라는 천연합금으로 만들어 졌다. 강낭콩만한 크기에 사자의 모습이 찍혀 있고 금속의 무게를 증명하는 내용도 압인되어 있으며 '스테이터' 또는 '스탠더드'로 불려졌다. 그리스인들이 이 일렉트럼의 유용성에 탄복하여 동전을 만들기 시작, 소아시아와 남부 이태리지역 등 에도 주조 화폐 시대가 열려 로마로 이어지게 되었다.
   
1101년 고려 숙종은 대각국사 의천의 건의를 받아들여 독특한 형태의 은병 화폐를 발행하였다. 은 1근으로 우리나라의 지형을 본따서 병의 형태로 주조 한 것으로 윗부부의 입구가 넓은 데서 활구라 부르기도 했다. 후일 은의 조달이 어렵게 되어 동을 혼합한 위조가 성행하게 되어 1331년 크기를 축소한 소은병을 발행하였으나 조악한 위폐가 점점 더 심하게 나돌아 1408년(태종8)에 유통이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를 '돈'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천하를 돌고 돈다'는 데서 '돈'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 둘째는 옆전 열 닢을 한 돈으로 부른 화폐 단위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 그리고 약이나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중량단위인 '돈중()'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영어의 '머니(Money)'는 하늘의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에서 왔다.
기원전 269년 로마인들이 그녀의 사원에 최초의 주화 제조 공장을 차린 연유로 주전소를 Moneta 또는 영어명인 Mint라 했고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말인 Monnaie의 영향으로 주전소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을 Money라 부르게 되었다.
 
별전은 상평통보를 만드는 곳에서 엽전을 만들기 전에 먼저 원료인 구리의 순도와 무게를 확인하기 위하여 시험삼아 만들어본 '시주화'에서 비롯되었다.
단순히 시주화에 머물지 않고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동식물, 기원하는 글기 등을 새겨 넣어 왕실이나 상류사회에서 기념품 처럼 간직하였다.
우리나라의 별전은 대략 400여종에 달하는데, 그 문양이 중국, 일본것과 달리 소박하며 아름답고 탁월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고종때 만들어진 열회패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희귀한 대형 기념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